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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20대 나의 직장 이야기 (1)_씨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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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직장은 씨티은행 계약직이였다.

계약직과 정규직은 당연히 차별이 있지만 내가 들어가게 된 송금부는 정규직과 계약직의 비율이 반반이였고 직급자외에는 거의 계약직이라 업무 상으로 큰 차별은 느끼지 못했다.

출근 첫 날의 한 순간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출근한 나에게 과장님은 한 행원을 지칭하며 "이 분이 본인에게 일을 알려주실 껀데 지금 다들 바쁘니 여기 빈 자리에 앉아 계세요" 라고 말했다. 송금부는 은행 지점으로부터 들어온 해외 송금을 처리하는 부서라 지점 전화 받으랴 컴터로 처리하랴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덩그라니 혼자 앉아 있게 된 나는 꿰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몇 분간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 데스크 위의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당황.

몇분 사이였지만 다들 전화벨이 채 두번 울리기 전에 받고 "씨티은행 송금부입니다" 라는 멘트를 하는 것을 본 나는 본능적으로 두번째 전화벨이 울리기 전에 전화를 받고 선배들과 똑같은 멘트를 했다. 물론, 그 전화의 내용에 난 응대할 수 없었다. 어느 지점인지만 겨우 듣고는 나의 사수로 소개받은 분께 전화를 토스하는 게 다였다.

 

몇 분 뒤 과장님이 내 자리로 오셨다. "잘했어요 태도가 좋네요"

은행을 다니는 3년 동안 깐깐하기로 유명한 그 과장님의 그렇게 시원한 칭찬을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기술직이 아닌 이상 신입사원에게 회사는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신입사원 평가 항목에 많은 직책자들이 암묵적으로 "태도"라는 항목을 넣었을까.

"태도"라는 것에 오해는 하지 말자. 결코 아부나 아첨을 떨라는 것이 아니다.

출근 시간을 지키고(10분 빨리 온다고 안 죽는다. 1-2분 전에 헐떡이며 도착하는 사원보다는 10분이라도 일찍 도착해서 제 자리에서 일할 태세를 갖추는 사원이 이쁜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나 꼰대인가),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고, 일을 줬을 때 회피하지 않고 공부하는 자세로 받아들이는 신입 사원이 높은 점수를 받고 이쁨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나의 20대 직장 생활은 꽤 순탄하게 시작되었다.

물론 계약직 사원으로 서러운 순간들도 꽤 있었다. 나도 서울에서 멀쩡한 대학을 나왔음에도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 정규직으로 나타났을 때 마음 한켠이 시리는 건 어쩔 수 없었고, 어느 회의 장소에 갔는데 "계약직은 나가주세요" 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런 순간이 나의 20대에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러한 경험들이 지금 내가 40이 넘도록 현업에서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3년 계약이 끝나고 2년 연장 계약서를 작성할 무렵 나는 은행이 다니기 싫어졌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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